가치투자자이자 오마하의 현인 워렌버핏은 어떤 사람일까? Part 2(코카콜라 / 위기)

250x25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워렌 버핏에 대해 지난 Part1에 이어서 두번째로 이어서 써보려고 한다.

 

1. 워렌 버핏의 개인생활의 변화 

워렌 버핏이 45세 때 Susan Buffett은 워렌을 떠났다. 워렌 버핏과의 결혼생활을 유지는 했지만 인도주의자이자 가수였던 그녀는 자신의 삶을 원한다고 주장하며 샌프란시스코에 아파트를 구하면서 그곳으로 이사했다. 워렌 버핏의 햇빛과 빛과 같은 존재였던 Susan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다 떠나면서 워렌 버핏은 완전히 망연자실 했다. 갑작스러운 생활의 변화를 적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졌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워렌 버핏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만으로도 주가를 10% 올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의 명성은 커졌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은 주당 290달러 이상에 거래되고 버핏의 개인 재산은 1.4억 달러에 달했다. 그는 자신의 회사 주식을 단 한주도 팔지 않으면서 그가 받았던 5만 달러의 급여로만 생활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워렌 버핏은 한 브로커에게 "내가 얻은 것은 모두 버크셔에 묶여 있다. 밖으로 새는 틈새 몇개만 있으면 참 좋겠다."라는 농담도 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워렌 버핏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그는 구리선물을 단순히 추측으로 사들이는데 짧은 시간에 3백만 달러를 벌었고, 개인 투자에서는 투기에 가까운 투자를 한 경험이 있다.

 

2. 주요 매매

버크셔 해서웨이가 관리한 모든 훌륭한 비즈니스들의 최고의 특징은 모든 비즈니스가 안정적인 구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3년 워렌 버핏은 Rose Blumpkin에 의해 만들어진 수백만 달러의 가구 소매상인 Nebraska Furniture Mart에 들어갔고, Blumpkin에게 버크셔 해서웨이어 이 가게를 팔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Blumpkin의 대답은 간단한 "Yes"였고 6천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거래는 한 장짜리 계약서와 함께 악수로 체결되었다.

 

그리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Scott & Fetzer(이하 S&F)의 구입도 훌륭한 포트폴리오 추가였다. 그 회사 자체는 회장인 Ralph Schey가 LPO를 런치했을 때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었다. 그 해는 1984년이었고, Ivan Boesy는 주당 60달러라는 대항책을 내놓았다. Kirby 청소기와 월드북 백과사전을 만드는 S&F는 당황하고 있었고, 25만 주를 갖고 있던 버핏은 합병에 관심이 있으면 전화해 달라는 메시지를 회사에 전달했다. 전화벨은 거의 즉시 울렸고, 버크셔 해서웨이는 주당 60달러를 제공하였다. 1주일도 채 안되서 거래가 마무리되자 버크셔 해서웨이는 3.15억억 만덜 규모의 현금창출 강국을 보유해 포트폴리오를 추가했다. 고군분투하는 직물공장에 빼낸 작은 현금흐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회사 중 하나를 건설해 놓은 것이었다.

 

1986년에 워렌 버핏은 중고 팔콘 항공기를 85만 달러에 구입했다. 점점 유명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되면서 민간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활방식이 사치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워렌 버핏은 제트기를 엄청 사랑하게 됐다. 제트기에 대한 열정과 사랑 덕분에 90년대에 Executive Jet을 구매하게 되었다.

 

80년대는 버크셔의 가치가 계속 증가하다가 1987년 큰 하락이 있었다. 시장의 조정에 대해 워렌 버핏은 침착하게 회사의 가치를 확인하였고 업무에 다시 들어갈 정도로 주가보다는 사업 전반을 어떻게 보는지 잘 보여주는 일이었다. 미스터마켓의 일시적인 이상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워렌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가치가 1/4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일을 이어나갔다.

 

3. 워렌버핏과 코카콜라

미스터마켓의 이상현상이 있었던 다음 해인 1988년에 워렌 버핏은 코카콜라 주식을 중독자처럼 사들이기 시작했다. 워렌 버핏의 오랜 이웃인 코카콜라 사장은 이상거래를 알아차리고 거래를 조사하게 됐다. 워렌버핏은 자신이 주식을 사들이는 사람이라고 자백하고 법적으로 5%의 문턱에서 그의 보유주식을 공개하도록 요구받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몇 달 만에 버크셔는 이 회사 지분의 7%인 10.2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 3년 안에 버핏의 코카콜라 주식은 그 당시 버크셔의 가치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었다.

4. 밀레니엄 시대에서의 워렌버핏

90년대의 나머지 기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은 주당 8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런 천문학적인 위업에도 불구하고 닷컴버블의 광란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워렌 버핏에게 "감각을 잃었다"라는 비난을 하였다. 1999년 버크셔 해서웨이가 주당 0.5%의 가치상승을 보고했을 때, 몇몇 신문들은 "오마하의 기적"의 종말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기술 거품이 꺼질 것을 확신한 워렌 버핏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을 계속했다. 내재가치 이하로 팔리던 위대한 기업에 자본을 투하했고, 그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미스터마켓이 정상적으로 복귀될 때, 워렌 버핏은 다시 한번 스타가 되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가 닷컴버블 시절 4.5만 달러까지 떨어진 후 이전수준으로 회복되었고 워렌 버핏은 다시 한 번 투자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728x90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

<--애드디스끝-->